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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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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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신문이나 방송에서 여러 사람들이 고의에 의한 압살 살인이라 했을 때도 나는 ‘설마, 미군도 같은 사람인데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고의로 죽였겠어?’ 하며 사고라고 믿었다.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건 미국 / ()
☞ 사건의 개요
사건의 진상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순서
사건의 개요
사건의 진행 결과
다. 더구나 이번 사건이 사고사가 아니고 희롱 압살 후 확인 압살까지 자행한 잔인한 범죄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정말 기가 막히고 치가 떨렸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아직 철없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에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시청이며 어디로 태어나 처음 맛보는 열기에 휩쓸려 열심히 응원을 했었다. 물론 간간히 장갑차 사건에 대한 소문이 들리긴 했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뒤에 이것이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건 미국 / ()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건 미국
레포트 > 기타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 (SOFA)란 무엇이며 그 drawback(걸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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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장갑차 압살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는 그것이 주행 중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분노한 市民들.... 그리고... 촛불시위
두 여중생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생일잔치에 가기위해 갓길을 걸어가던 중이었고, 뒤에서 오던 미군 장갑차의 오른쪽 궤도부분에 치어 장갑차가 몸을 그대로 밟고 지나가 두 소녀는 어린 꿈을 피워 보지도 못한 채 억울하게 죽어갔던 것이었다.
아니, 모든 국민들도 사건의 심각성을 파악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려 7월이 되자 서서히 장갑차 진상규명이 불거져 나오기 처음 했고 그때서야 나도
여중생 압사 사건에 대한 무죄평결의 drawback(걸점)
살인이라고 내가 믿게 된 근거로는 시야 장애가 없는 직선 도로 인데다가 커브를 돌고 나서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시속 20㎞이하로 달리는 상황에서 15m 전방의 사람들을 못 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더더욱 사건이 일어난 날은 맑은 날씨였고 여중생들 역시 눈에 잘 띄는 원색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장갑차 조종사 같은 시력 좋은 군인들이 이들을 못 본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또, 아빠한테 들은 얘기로는 전차병은 전차 자체가 대형무기이기 때문에 장갑차 승무원들은 사관학교 학생들처럼 군기가 엄하고 특히 전차병 조종수는 정신과 몸이 강건한 자가 맡기 때문에 그런 실수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의 생각 ♣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사건 ♣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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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월드컵으로 온 나라에 붉은 물결이 넘실대고 함성이 메아리치던 그해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에서 미2사단 44공병대 소속 미군 장갑차(운전사 워커 마크 병장. 36세)가 앞서 가던 여중생 신효순(14/조양중 2년), 심미선(14/조양중 2년)양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